중요한 것은 ‘세척했는가’가 아니라 ‘제대로 세척됐는가’
“제품 맛이 평소와 달라요.” 한 음료 제품에서 평소와 다른 맛이 난다는 고객 클레임이 접수됐다.
제품의 맛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원료나 배합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마련이어서 해당 공장에서도 원료의 상태와 배합비를 확인하고 제조공정을 하나씩 점검했다. 하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품의 맛을 바꾼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원인을 찾기 위해 제조공정을 거꾸로 따라가다 보니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곳에 시선이 멈췄다. 바로 음료가 생산될 때마다 지나가는 배관이었다.
식품공장의 배관 내부는 작업자가 매번 분해해서 직접 닦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 음료나 유제품처럼 액상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설비를 분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척액을 순환시켜 내부를 세척하는 CIP(Cleaning In Place) 방식을 널리 사용한다.
해당 공장 역시 생산이 끝나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CIP를 실시하고 있었다. 세척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설비 외관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견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배관 내부 일부 구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바이오필름(Biofilm)이 문제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필름은 미생물이 설비 표면에 부착해 형성하는 막 형태의 구조다. 배관 내부에 제품 잔류물이 남아 있고 세척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미생물이 표면에 부착하고 증식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바이오필름이 단순히 배관 내부의 위생상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이오필름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제품의 미생물학적 안전성과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미생물의 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 등에 의해 평소와 다른 냄새나 맛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소비자가 제기한 ‘맛이 이상하다’는 작은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배관 내부의 세척상태를 확인하게 만든 신호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매일 CIP를 실시하고 있었는데도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세척 버튼을 눌렀다고 배관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냐
현장에서는 생산이 끝난 뒤 정해진 CIP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설비 내부가 자동으로 깨끗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세척액이 배관을 순환하고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종료됐다면 필요한 위생관리가 모두 끝났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CIP를 실시했다는 사실과 실제로 배관 내부가 충분히 세척됐다는 사실은 다르다.
CIP는 단순히 세척액이나 살균·소독액을 배관 안으로 흘려보내는 작업이 아니다. 배관 내부에 남아 있는 음료 성분과 오염물을 제거하려면 세척액이 오염된 표면에 충분히 접촉해야 하고, 세척과 헹굼, 필요한 살균·소독 단계가 적절한 순서와 조건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사용하는 세척제의 농도와 온도, 유속, 처리시간 등이 모두 중요하다. 적절한 온도에서 충분한 시간 동안 세척하더라도 세척액의 흐름이 약해 오염물에 필요한 물리적 작용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세척 효과가 떨어질 수 있고, 반대로 유속이 충분하더라도 세척제의 농도나 처리시간이 적절하지 않다면 기대한 수준의 세척 효과를 얻기 어렵다.
결국 CIP는 어느 한 가지 조건만 충족한다고 완성되는 공정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함께 맞아야 제대로 작동하는 위생관리 시스템이다.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은 설비 내부의 모든 구간에서 이러한 조건이 동일하게 충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배관 속 사각지대, 세척액이 지나가지 않는 곳에 문제가 남는다
배관 내부에 내용물이 정체되기 쉬운 부분이 있거나 세척액의 흐름이 충분히 도달하지 않는 구간이 있다면, 다른 부분은 깨끗하게 세척되더라도 일부 구간에는 오염물이 남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주의해야 할 곳이 분기된 배관이나 밸브 주변, 이른바 데드레그(Dead leg)와 같이 유체의 흐름이 정체되기 쉬운 부분이다.
이러한 곳에 제품 잔류물이 반복적으로 남으면 미생물이 부착하고 바이오필름을 형성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배관 전체에 세척액을 순환시켰더라도 실제로는 특정 구간에 충분한 세척 효과가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미 형성된 바이오필름은 단순히 살균·소독제를 흘려보내는 것만으로 제거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바이오필름이 미생물을 보호하는 구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표면에 부착된 오염물을 충분히 제거하는 세척 과정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식품설비를 설계할 때는 생산 효율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제품이 배관 내부에 가능한 한 남지 않고 배출될 수 있어야 하며, 세척액이 필요한 표면 전체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도록 배관의 구조와 연결 부위, 밸브의 형태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생산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배관 구조가 세척할 때는 오히려 오염물이 남는 사각지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CIP의 성능은 작업자가 세척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설비를 처음 설계하고 설치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미 세척의 효율과 한계가 결정되기 시작한다.
자동화된 CIP, 프로그램이 정상 종료되면 안심해도 될까
CIP의 세척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설비 구조뿐 아니라 실제 작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차도 관리해야 한다.
CIP를 시작하기 전에는 배관과 탱크에 남아 있는 제품을 충분히 배출해야 하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세척과 헹굼, 필요한 살균·소독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제품을 생산하고 다양한 설비를 동시에 관리하는 현장에서는 작업자가 세척 순서를 혼동하거나 일부 단계를 빠뜨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작업 편차를 줄이기 위해 세척액의 투입과 회수, 온도와 시간 등 여러 조건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CIP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한다.
자동화의 장점은 단순히 작업자의 수고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정해진 조건에 따라 반복적으로 세척을 실시하고, 실제로 어떤 조건에서 세척이 진행됐는지를 기록으로 남겨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자동화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설정한 온도와 시간이 실제로 유지됐는지, 세척액의 농도와 흐름이 적절했는지, 배관의 각 구간에 필요한 세척 조건이 충족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척이 끝난 뒤 실제로 오염물이 충분히 제거됐는지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세척액의 온도와 순환시간이 기록상 정상 범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특정 배관 구간에서 세척액이 충분히 흐르지 않았다면 그 기록만으로 전체 설비가 깨끗해졌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필요에 따라 세척액의 농도와 온도, 유량 등의 운전 기록을 확인하고, 헹굼 상태나 잔류물, 미생물 검사 등 설비와 제품의 특성에 적합한 방법으로 세척 효과를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CIP 시스템에 ‘프로그램 정상 종료’라는 표시가 나타났다는 사실과 배관 내부가 실제로 깨끗하다는 사실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다.
모든 설비를 CIP로 세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모든 식품설비가 CIP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설비의 구조상 세척액이 충분히 도달하기 어렵거나, 부품을 분해하지 않고서는 오염물을 제대로 제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러한 설비에 무조건 CIP만 적용한다면 세척을 반복하더라도 일부 오염물이 남을 수 있다.
이럴 때는 설비나 부품을 분해해 별도의 장소에서 세척하는 COP(Cleaning Out of Place) 등의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CIP와 COP 중 어느 방식이 더 우수한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설비의 구조와 제품의 특성, 발생할 수 있는 오염의 종류를 고려해 적합한 세척방법을 선택하고, 그 방법이 실제로 충분한 세척 효과를 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이러한 관리가 작업자의 경험이나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세척·소독 표준작업절차(SSOP)를 마련하고, 누가 작업하더라도 정해진 조건과 순서에 따라 같은 수준의 위생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척방법을 정했다면 그 절차가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확인하고, 설비 구조나 생산제품이 바뀌었을 때 기존의 세척방법을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지 다시 검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배관일수록 '세척했다'는 기록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식품공장에서 작업대가 더러운지, 바닥에 제품 잔사가 남아 있는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닦거나 세척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관은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설비가 아무리 깨끗해도 배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세척액이 매일 순환하고 정상적으로 배출되고 있더라도 일부 구간에는 제품 잔류물이 남아 있을 수 있고, 그곳에서 미생물이 부착해 바이오필름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례에서도 처음에는 음료의 맛이 달라졌다는 소비자의 클레임에서 출발했다. 원료와 배합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지만, 제조공정을 따라가며 배관 내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세척관리의 문제를 살펴보게 됐다.
만약 CIP를 실시했다는 기록만 확인하고 점검을 끝냈다면, 보이지 않는 배관 내부의 문제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식품공장에서 위생관리를 한다는 것은 정해진 세척작업을 빠짐없이 실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세척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반복된다면 설비 구조와 세척 조건까지 다시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작업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배관 내부일수록 이러한 검증은 더욱 중요해진다. 소비자가 느낀 작은 맛의 변화가 때로는 공장 내부의 보이지 않는 문제를 알려주는 첫 번째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CIP 관리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오늘도 세척했는가’가 아니다.
‘오늘 세척한 배관은 정말 깨끗한가?’ 세척 프로그램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심하지 않고, 그 결과까지 확인하는 것. 보이지 않는 배관의 위생관리는 바로 그 질문에서 완성된다.
이아름 식품기술사는...
국내 식품 연구소에서 15년 이상 국내외 유통사 및 제조사를 대상으로 식품안전 시스템 구축·적용, 컨설팅, Audit(FSSC22000, HACCP) 및 교육 업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는 식품 안전·법규·인증 기준을 중심으로 외식업과 식품 제조업 현장을 연결하는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실무 기준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저서 『음식점과 제조업을 지켜주는 단 한 권의 가이드』를 통해 창업 및 운영 과정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정리했으며, 프랜차이즈 업태별 식품안전 관리 주체와 법·제도 보완 필요성을 분석한 논문 “The Korean food franchise industry: Diverse development and conceptual definitions of a food safety managing body”를 공동 집필했다.





